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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동환
2026.08.0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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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읽기의 충격적 현장을 문명사적으로 탐구한 책 ‘읽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나오미 배런(Naomi S. Baron). 언어와 기술에 관해 30년 쨰 연구한 최고 권위자로 현재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 명예 교수다.
독서와 읽기, 그로 인한 극치감과 수치감에 대해 처음 알려준 영화는 ‘더 리더’였다. 극 중 ‘한나’로 분한 케이트 윈슬렛은 소년 마이클에게 늘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허클베리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명작을 들으며 한나는 행복해 한다.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과 전범 재판장에 피고인으로 선 한나.
한나는 법정에서 자신이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감춘다. 문맹의 수치를 감춘 대가가 종신형일지언정. 훗날 마이클이 감옥으로 보내온 책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비로소 읽고 쓰게 된 한나. 케이트 윈슬렛의 환희에 찬 ‘읽는 얼굴’, 그리고 삐뚤빼뚤 써내려간 “꼬마야, 이번 책 좋았어”라는 편지를 잊을 수 없다. 읽을 수만 있다면, 감옥도 우주를 향해 뚜껑이 열리듯.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변은아PD(고윤정)가 시나리오를 ‘읽는’ 장면이다. 제가 쓴 시나리오를 읽어주기만을 목 빼고 기다리는 나약한 감독들 앞에서, ‘읽는 인간’ 변은아와 제작사 대표 고혜진이 씩씩하게 쓰는 이들의 ‘무가치함’을 벗겨주는 장면들은 얼마나 통쾌했던가.
릴스와 SNS로 소실된 읽기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나도 얼마 전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토지’ 전집을 펼쳐 들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내용을 요약해 주는 AI의 과도한 친절도 질색이거니와 알만한 편집자들까지 AI가 써준 듯한 이메일과 기획안을 보내오는 것에 적잖이 놀랐기 때문이리라.
영화 ‘더 리더’, 드라마 ‘모자무싸’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읽는(혹은 읽어주는)’ 주체로서 나 자신과 타인을 구원할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읽어주는’ 주체가 AI로 대체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읽기의 외주화가 가랑비에 옷 젖듯 진행되는 상황에서,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을 읽었다.
AI는 속삭인다. “당신은 바쁘니 다 내게 맡기라, 읽는 기쁨도, 읽는 노동도.” “소설도 논문도 요약해 주고 시나리오도 법조문도 다 읽고 판단해 주겠노라”고. “당신의 뇌 썩음은 알 바 아니라”고.
인간&AI 독서,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건 보고서 ‘읽지 않는 사람들’을 읽을수록, 나는 내가 멸종되어 가는 ‘읽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두려움과 황홀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 시대 가장 찬란한 별종은 ‘읽는 인간’이 될 거라 예감하며.
▲영화 ‘더 리더’의 한 장면.
‘읽지 않는 사람들’을 쓴 세계적인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을 인터뷰했다. 나오미 배런은 ‘읽기와 학습’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AI 효율이 탄생시킨 대규모 ‘맥락맹’들을 추적하며 왜 우리가 ‘깊이 읽기’를 포기하면 안 되는지를 차분하게 설득해낸다.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이라는 단어를 선정했지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용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1854년에 출판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그러나 이 시.에 ‘뇌 썩음’이란 말은 디지털 기반 기술들이 우리의 뇌에 어떤 충격을 가하고 있는지를 잘 표현해 줍니다.”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 우리 뇌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뇌 썩음 혹은 뇌 튀김.
자극적이고 질 낮은 콘텐츠에 절여져 뇌의 인지 능력이 훼손되는 뇌 썩음( Brain rot)), 과도한 AI 멀티태스킹으로 뇌 신경망이 과열돼 셧다운을 일으키는 뇌 튀김(Brain fry). ‘손님, 주문하신 반반 메뉴, 뇌 썩음과 뇌 튀김 나왔습니다’ 환청이 들려오는 듯했다.
읽고 쓰고 추론하고 상상할 때 뇌의 신경망이 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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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런이 가지를 뻗어가는 모습은 마치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우거지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러나 AI에게 읽고 쓰기를 내어주는 지금, 우리 뇌를 들여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썩은 나무로 괴사한 숲이나 꽉 막힌 고속도로의 모습은 아닐는지.
-원래 제목은 ‘읽기의 종말’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위기의식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제가 느낀 위기감은 더 컸어요. ‘직접’ 읽는 양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디지털 화면으로만 글을 서핑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오랫동안 이 분야를 연구했는데, 디지털로 읽으면 긴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생성형 AI가 급부상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죠.”
▲생각 멸종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책, AI 독서의 위험을 진단한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제 주위에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 책을 내고 다 작가가 되었지만, 。. 더 그 책을 읽어줄 독자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자발적 독자는 .. 더 희귀종이 되어 가고 있지요. AI는 읽고 쓰는 능력 중 어떤 능력을 더 치명적으로 먹어치웠나요?
“읽는 일을 기계에 맡길수록, 읽고 쓰는 능력 다 위협받습니다. 더 심각한 건 읽고 쓸 동기부여 자체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제가 미국에서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은 책의 내용을 ‘축약본’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 만족해하고 있어요. 강연이나 팟캐스트를 듣거나, 요약이나 서평을 읽는 식이죠. 그러다 보니 정작 책 자체를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AI 때문인지 논픽션 시장은 독자가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미국에선 논픽션 뿐 아니라 소설도 마찬가지 신세예요. 원래 서평의 목적은 독자들이 그 책에 돈과 시간을 투자할 만한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AI가 어떤 책이든 순식간에 요약이나 서평을 써버리니, 사람들이 책을 직접 구해 읽으려는 동기가 줄어들밖에요.”
-다들 독서 환각 상태에 있습니다. 안 읽었는데 읽은 것 같은… 하지만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직접 읽는 것과 AI가 읽고 요약해 준 것을 읽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 ‘미들마치’는 매우 긴 책입니다. 영어판은 800페이지가 넘죠. 게다가 조지 엘리엇은 150년도 더 전에 이 소설을 썼습니다. 문장은 촘촘하고 끝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을 계속 따라가야 하기에, 틱톡 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속이 터질 겁니다.
하지만 AI가 대신 읽고 분석한 ‘미들마치’로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체험할 순 없어요. 주인공들이 겪는 비참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인간적 연민이 생길 리 만무합니다. 인간의 분투를 경험하고 싶은가요? 대가를 치르는 만큼 얻는 법입니다. AI 요약문을 읽는 건, 노르웨이 전시관을 방문하고 노르웨이를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허망합니다.
▲영국화가 존 캘콧 호슬리가 1870년 그린 소설 ‘미들마치’에 나오는 ‘뱅커의 프라이빗 룸’.
하지만 현실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원서조차도, 학생들에게 읽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약본은 트웨인의 문장이 지닌 풍부한 언어적 결, 이를테면 작품 속 흑인 노예 짐의 방언을 이해하려는 추리 과정 같은 건 경험할 수 없습니다. 허클베리와 짐이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는지 성찰할 기회도 얻지 못하죠. 성장 소설을 AI가 대신 읽게 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떤 ‘읽기’는 AI에게 맡겨도 괜찮고, 어떤 ‘읽기’는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할까요?
“같은 독자에게도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글의 핵심 내용만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싶을 때는 AI 요약본으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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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위키피디아 문서를 먼저 훑어보거나(‘미들마치’ 줄거리 요약도 포함해서요!) 연구 논문의 초록을 읽는 것처럼요. 요약 정보를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더 깊이 읽어볼지 판단할 감각은 얻게 됩니다.
저는 AI에 대신 읽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재밌을 수 있다는 。도, 부인하지 않아요. LLM 실험 중에 클로드에 “리어왕에 대한 유머러스한 200단어 요약문”을 요청한 적이 있어요. 클로드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한번 상상해 봐. 괴팍한 늙은 왕이 세 딸과 함께 “아빠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라는 게임을 하기로 결정했어. 상금은? 대충 왕국의 3분의 1.’
하지만 이건 실험일 뿐입니다. 저의 경우 흥미로운 서사, 제 직업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은 끝까지 스스로 읽습니다. 소설이 그렇고, 학술 논문 같은 정보 텍스트도 대체로 그렇습니다. 초록을 사람이 썼든 AI가 썼든 관계없이, 저에게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첫 요약이 아닌 본문 어느 구석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저는 인간이 쓴 글을 읽을 때도 항상 ‘끝까지’ 읽지는 않습니다. 정보성 자료라면 필요한 내용을 얻었다고 느낄 때 멈추고, 소설은 글이나 인물, 줄거리가 내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중간에 책을 내려놓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요.”
-대학은 AI 사용에 관한 한 최전선의 방어선이 되길 기대했습니다. 실상은 처참하더군요!
“지난 3년 반 동안 학생들 과제의 독창성에 대한 교사들의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반대로 두 손 놓고 AI 대필 여부를 잡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해요. 양극단에 끼어서 학생들만 오락가락합니다.
많은 할생들이 AI에게 쓰거나 읽는 걸 맡기는 걸 꺼림칙하게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해로운 ‘부정행위’라는 인식이 있죠. 하지만 동시에 경쟁에서 뒤처지고, AI를 활용하는 동급생들보다 낮은 성적을 받을까 두려워합니다.”
지금 각 대학은 의미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쓰기는 볼 수 있지만…… 읽기는 볼 수 없다.”
-AI가 쓰고 AI가 읽는 대입 지원서도 정말 아이러니하더군요. 입사 지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야말로 에이전트끼리 벌이는 초현실적인 게임 아닌가요?
“통계에 따르면 채용 담당자들이 이력서와 추천서 검토에 쓴 평균 시간은 7.4초예요. 기업들도 이미 수년째 지원서를 컴퓨터로 분류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지원서에 적절한 키워드를 넣는 응시자가 눈에 띌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적의 후보자인지와는 별개로요.
대학은 더 심각해요. 전통적으로 대입 에세이는 자기표현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에세이 코치를 고용하거나 심지어 대신 에세이를 써줄 사람을 구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우회해 왔어요. 이제는 AI가 대필자의 역할을 대신할 뿐!
“우리는 더 이상 에세이가 학생의 실제 글쓰기 능력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듀크대학교 학부 입학처장의 말입니다.
문제는 일부 대학도 에세이와 지원서를 읽을 때 AI에 의존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 에세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달려 있으니, 부디 글의 뉘앙스와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평가해 주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의 호소문이 정말 초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독립적 사고를 길러주겠다고 약속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학생을 선발하는 평가적 읽기를 기계에 맡긴다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죠.”
-선생님은 현장에서 LLM이 쓴 글과 인간이 쓴 글을 쉽게 알아챌 수 있나요? 어떻게 그 차이를 느끼세요?
“너무 정중하고 지나치게 논리적이며 특정 고급단어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매끄러운 글은 십중팔구 AI더군요. 챗GPT 초창기에 에드워드 티안이라는 대학원생이 AI 탐지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기준은 당혹감과 돌발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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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쓴 문장에는 의외의 감정과 추리가 필요한 ‘당혹감’, 문장의 길이나 구조 변화가 잦은 ‘돌발성’이 드러나는 반면, LLM은 예측성 기반이라 문장이 친숙하고 매끄러워요. 텍스트의 길이와 복잡도도 균일하죠.
하지만 최근에는 LLM이 .. 정교해져, 어떤 글이 AI의 것이고 인간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AI의 특정 표현 방식(예를 들어 ‘delve(깊이 파고들다)’ 같은 단어를 남용하거나 줄표를 사용하는 등)을 피하도록 LLM을 미세 조정하면 특히 그렇습니다.
저는 앞으로 1년 이내에 특정 텍스트가 인간이 썼는지 AI가 썼는지를 두고 고민하는 일이 줄어들고, 대신 인간이 직접 쓰고 읽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더 집중하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no pain no gain. ‘읽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든 손 등에 불거진 힘줄이 강렬하다.
-이즈음에서 독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지요. 히틀러나 스탈린이 책벌레였다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왜 어떤 리더는 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고도 잔혹한 리더가 되고, 어떤 독자는 오프라 윈프리나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내면이 더 넓고 깊어지는 걸까요? 읽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까요?
“버락 오바마나 프란치스코 교황부터 문학 교사들까지, 진지한 독자들은 독서가 공감 능력을 길러준다고 말합니다. 사실이지만, 경험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죠. ‘읽지 않는 사람들’ 책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방대한 독서량을 언급한 이유는, 위대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조차도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였어요.
책은 오히려 그들이 폭력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하면서 따라온 비인간적 현실로부터 그들을 도피시켰습니다. 반면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고, 타인의 안녕에 관심이 많았어요. 독서 습관과 공감 능력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사실 무리입니다. 그럼에도 언어학자인 저는 둘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어요.”
-최근에 저는 우연히 LLM이 데이터 언어 사료를 먹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앤트로픽이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전집, 시집, 문학 작품 등 수만 권의 책을 뜯어 한 장 한 장 고속 스캔한 후 파쇄하는 사진이었죠. 언어학자이자 고전적인 애서가인 당신은 이 풍경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말씀하신 것과 같은 대규모 스캐닝 작업을 처음 시작한 곳은 구글입니다. 2000년대 초반 구글 북스(Google Books) 사업의 일환이었죠. 책이 훼손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도 썩 유쾌하지 않은 일입니다만, 저자로서 저는 저작권 침해 문제가 더 걱정됐어요. 제 책들과도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그 침해 문제는 미국작가조합과의 10년에 걸친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고, 구글은 결국 ‘공정 이용(fair use)’ 원칙에 근거해 승소했습니다.
앤트로픽을 둘러싼 현재 상황은 이와는 또 다른 저작권 침해 문제를 다룹니다. 주요 소송에서 앤트로픽은 ‘해적판(불법)’ 데이터 사이트에서 방대한 양의 저작권 보호 자료를 수집했음을 인정했습니다. 담당 판사는 앤트로픽이 직접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하지는 않았지만, 불법 출처의 자료를 가져온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죠.
문제가 된 수십만 권의 책 중에 제 책 두 권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저는 해적 사이트들이 텍스트를 긁어모으기 위해 어떤 파괴적인 행위를 벌였는지보다는, 지식재산권 문제 자체를 더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우려스럽게도 테일러 앤드 프랜시스 같은 출판사들은 이미 AI 기업들에 LLM 훈련용 데이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합성 텍스트들의 세상에서 인간이 생산한 지식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AI 생성 이미지
-LLM이 생성한 텍스트들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LLM 텍스트들이 서로의 출력물을 학습하다 보면 생물학적 ‘근친교배’와 같은 부작용이 일어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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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시시한 합성 텍스트만 출력돼서 ‘종의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언! 그러니까 10년 후, ‘텍스트포칼립스(textpocalypse)’ 세상이 오면, 인간이 쓴 글인지 기계가 쓴 글인지 알지도 못할 뿐 더러,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될 거라는 예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문제는 이미 우리 손을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이미 일반 독자들은 정교한 LLM이 생성한 글과 인간이 쓴 글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경 쓸 것인가’의 문제는 저에게 매우 중요해요. 이전 책 ‘쓰기의 미래(원제: Who Wrote This?)’에서 저는 창의성 문제를 다뤘습니다. AI가 ‘창의적’일 수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에 신경 쓸 것인지의 문제였죠.
창의성에 있어서 과정이 결과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그림이든, 소설이든, 이론이든)가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갈망, 열망,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창조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과 공동체에 유익을 줍니다.
연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실제로는 인간이 쓴 글을 AI가 썼다고 알려주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AI가 쓴 글을 인간이 썼다고 하면 그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아집니다. AI가 매우 정교한 글을 생성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 종(種)이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글을 여전히 더 높이 평가합니다.”
“AI가 어떤 직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화이트칼라 전문직에 대해서는 종말론적 시나리오도 있지만,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일의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이 유지하게 된다는 긍정적 전망도 있습니다.
법률 분야에서 악명 높은 사례들은 지금도 종종 터집니다. 슈워츠라는 변호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과 관련된 판례를 훑는 데 챗GPT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판례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사가 발견했죠. 제대로 읽지 않을수록, 신뢰도는 추락합니다.
기자라는 일자리는 AI 등장 전부터 위협받았어요. 독자 감소와 광고 하락으로 많은 신문사들이 문을 닫고 있지 않나요? 연구자들은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은 낮지만, 대신 문헌 검색과 선행 연구 비교 분석을 간소화하는 데 LLM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클리프노츠(CliffsNotes)나 스파크노츠(SparkNotes)라는 줄거리 요약 서비스에 의존하면서 정독에서 멀어지고 있죠.”
▲진중문고의 기원. 전쟁터에서 책을 읽는 병사들/AI 생성 이미지
-과거로 갈수록 ‘읽기’에 진심인 풍경이 위로가 되더군요. 전쟁터 참호 속에서도 책을 읽는 병사들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의사가 진통제 주듯 사서들이 책을 들고 군 병원을 찾았다고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승선하는 병사들을 위해 100만 권을 배정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몰리 굽틸 매닝의 흥미진진한 책 ‘전쟁터로 간 책들’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그날 나중에 해변을 오른 많은 사내는 중상을 입은 병사들이 가파른 언덕 기슭에 몸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독서치료 활용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가 있어요. 책을 정신적·신체적 치료제로 사용하는 현대적 독서치료의 역사는 18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답니다. 진중문고의 기원이지요.
최근에는 미국의 여러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을 다잡는 방법으로 함께 (조용히 혹은 소리 내어) 읽기 위해 모이고 있습니다. 맞아요. 희망은 있습니다.”
-50~90세 성인 3,500명 이상을 추적하며 독서 습관과 수명을 측정한 결과,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읽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통계도 흥미로웠습니다.
“새로운 언어나 악기를 배우면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신경 경로가 만들어지고, 두뇌 건강이 신체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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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명상의 이。은 신문이나 잡지 같은 정기 간행물을 읽을 때는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한 권의 책 분량의 글을 읽을 때만 해당했어요.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뇌는 단어와 문장 수준을 넘어 더 긴 줄거리와 인물의 변화 과정까지 처리합니다. 긴 서사의 맥락을 붙잡고, 앞서 등장했던 인물들의 관계와 복선을 끊임없이 기억해 내죠. 책을 통째로 읽어 버릇한 아이들이 짧은 글 조각만 읽은 아이들보다 독해력 평가 .수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책을 쓰기 위해 선생님은 어떤 자료를 읽었습니까? 읽는 동안 언제 괴로웠고 언제 기뻤나요?
“무엇을 읽었냐고요? 거의 모든 것을 다 읽었습니다. AI 기술 트렌드, 독서 자체에 관한 고전적인 자료, 여러 나라의 독서 감소를 추적한 연구들… ‘읽지 않는 사람들’의 참고 문헌 목록은 무려 33페이지에 달합니다.
기쁠 때는…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인간 독서의 비밀을 증명해 낸 보석 같은 논문을 찾아 읽을 때였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의외의 좌절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서 문장을 뜯어고치고 비트는 싸움을 반복해야 했죠. 결국은 어느 시。에 뉴스 업데이트 읽기를 그만두어야 했어요.”
▲영화 ‘콘택트’에서 고도로 진화한 우주인이 쓰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축된 비선형 문자.
-개인적으로 영화 ‘콘택트’에서 저는 고도로 진화된 우주인과 비선형 문자로 소통하는 주인공 언어학자 루이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LLM 시대에, 언어학자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잘만 통제하면 AI로 언어적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AI 통번역 덕분에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낯선 작품들을 읽고,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의 이웃들과도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통해 성별, 인종, 심지어 문화에 따른 다양한 편향을 탐지할 수도 있지요. 소멸 위기에 있는 언어를 기록하고 해당 언어의 LLM 데이터세트를 구축하는 등, AI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언어학자에게 읽기의 흥분을 선사하는 책은 어떤 종류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잘 쓴 미스터리 소설, 역사 소설, 북유럽 누아르입니다. 오랫동안 일과 관련된 책을 주로 읽었지만, 팬데믹 기간에 소설을 탐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는 주로 밤에 하지만,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도 읽는 걸 좋아해요. 책이 좋으면 야간 비행에서 잠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시애틀에서 싱가포르까지 약 16시간 비행에서 프레드릭 배크만의 ‘나의 친구들’에 빠져들었습니다. 착륙 직전에 책을 다 읽었는데, 멋진 소설이었지만 수면 부족의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앞으로도 저는 읽기나 글쓰기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을 계획입니다. 게으름을 피울 때 제미나이에 질문하는 정도죠. 예측 단어 선택, 문장 자동 완성은 격렬하게 거부합니다만, 맞춤법 검사 기능은 저의 부족을 인정하고 사용하고 있어요.”
▲읽기에 대한 모든 결정은 결국 우리가 정신적 노력을 얼마나 기울일 뜻이 있는지에 달렸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계속 읽는 인간으로 남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읽기 능력 없이도 충분히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문자는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현상입니다. 겨우 약 5,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기간에도 문자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문자가 없는 사회가 존재했으며, 그 구성원들은 종종 지적이고 세련되고 현명했습니다. 기억과 구전 역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요.
그러나 읽고 쓸 기회가 있는 곳에서라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읽기 능력’은 인간의 뇌 구조를 바꿉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상상력을 키우고, 타인의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순수한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하지요. 이 모든 장。을 알고도,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부디 자기만의 기준, 독법을 정해서 꾸준히 읽어 나가기 바랍니다.”
행 연구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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